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예루살렘 왕국 (문단 편집) ==== [[지하드]](جهاد) ==== 십자군의 난데없는 선방을 당한 이슬람 측은 십자군을 또 하나의 단순한 서방 야만족들의 침략 정도로 치부했으므로 평소 자손대대로 사이가 안 좋던 인근 지방의 [[에미르]]가 털리는 것을 박수 치며 좋아라 했고, 칼날이 자신으로 향하면 멀리서 이슬람풍의 풍악소리가 들리는 걸 들으면서 다굴 맞던 식이었다. 자신과 원한이 있는 에미르에게 십자군이 행군하면 잠자리를 제공하고 지원도 해주었던 그들이지만 십자군의 궁극적 목적이 비기독교 종교를 구축하러 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이런 착각을 하는 콩가루 민족에게는 연합 요격전 같은 방어는 요원한 일이었다. 그런 암울한 상황에서 나타난 이슬람 군웅이 있었으니 바로 [[이마드 앗 딘 장기]]다. 그는 본래 [[이라크]] 남부 [[바스라]]의 총독이었는데, [[1127년]] 투르크 군대에서 용력을 떨친 후 이라크 북부의 [[모술]]의 에미르로 임명된다. 그는 찌끌찌끌한 [[술탄]]들의 땅 따먹기 놀이터인 시리아 전역을 [[셀주크 튀르크]]로 통합하려는 야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안 지방 술탄들은 당황해 하면서도 서로 반목해버리는 역사의 반복을 시전하시고 [[1128년]], [[아르투크 왕조]]의 잔당으로부터 시리아의 거점 [[알레포]]까지 장기의 손아귀에 떨어져 십자군에 비견될 만한 세력을 형성했다. 시리아 동북부를 통합한 장기는 십여 년 동안 내실을 다지며 [[에데사 백국]]에게 [[지하드]]를 선포하며 호각지세로 맞섰다. 때마침 [[제1차 십자군 원정|제1차 십자군]]의 주역이던 에데사 백국의 조슬랭 드 쿠르트네가 장기에게 빼앗겼던 도시에서 공성전을 하던 중 적이 설치한 지뢰를 밟아 중상을 입었다. 빈사에 가까운 상태에서도 전투를 지휘하여 탈환에는 성공하여 십자군 1세대다운 용맹을 보이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얼마 뒤 예수를 영접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